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아침부터 무척 날씨가 춥다고 나온 이 날, 하필 박물관에 갔다 왔냐면 1정 연수 체험보고서 때문입니다. 그 중에 저희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도 있었지만, 그래도 가깝고 별 내용없는 곳을 가기보다 이왕에 가는 김에 그 동안 한 번 가 봐야지 벼르고 있었던 곳을 가서 제대로 돌아보자라는 생각에 가긴 했는데, 어휴. 정말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무지 크더군요.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전부 다 돌아볼 줄 알았습니다. 제대로 보려면 하루 가지고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절로 마음에 와 닿더군요.ㅡ.ㅡ  결국 다 보지 못하고 1층만 겨우겨우 돌아보고 왔습니다. 그 1층 돌아보는 것도 막판에는 너무 피곤해서 좀 대충 보고 나왔지만 말입니다.시간으로 따져보니 겨우 4시간 정도를 돌아다닌 것 밖에 안 되는데 말입니다.ㅡ.ㅡ 4시간 동안 1층만 겨우 돌아봤다라.. 에휴.ㅡ.ㅡ

도착하자마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더군요.^^ 이름까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는 선생님들의 얼굴이 하나 둘씩.. 그래서 현장 연수에 꼭 들어가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간 사진을 찍는 데 쉽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일단 꼭 필요한 사진 한 장 찍고 임무 완수, 본격적으로 박물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1 층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더군요. 고고관과 역사관인데, 고고관은 우리 나라의 고대 역사의 한 흐름을 유물을 따라 볼 수 있었고, 역사관은 각종 인쇄물, 지도 등을 중심으로 생활의 한 모습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 동안 교과서에서 조그마한 사진으로 보거나 책을 통해서 머리 속으로 알고 있었던 것과 직접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의 차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유물의 실제 크기, 질감 등을 말이지요. 또 그 유물을 만든 재료의 특성도 쉽게 알 수 있었다고 할까요.^^

돌로 만들어진 칼과 청동, 금동으로 만들어진 재료의 특성.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하며 돌로 도구들을 만들었고, 그 시대의 도구로 이용한 돌의 특징 등등, 청동기 시대의 청동칼, 그리고 후에 철기 칼 등을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문득 직접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돌칼은 철칼보다 시대가 더 오래 되었지만 돌은 잘 변하지 않기에, 기껏해야 깨지는 것 외에는 별 변화가 없었지만 철칼은 쇠이기 때문에 녹이 슬었지? 그래서 더 낡아보이는구나. 뭐, 이런 생각. 정말 단순한 생각이지요. 근데 직접 유물들을 보니 그런 밑바닥에 의식하지 않고 깔려 있던 그런 생각들이 순간순간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연결지어서 위로 떠오르더군요.

우리나라 도깨비와 일본 도깨비의 차이는 뿔이 있고, 없고의 차이. 알고는 있었지만 여러 기왓장 무늬를 통해서 뿔이 있는가 없는가 다시 확인하던 재미도 있어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의 확인이랄까?^^

또 하나는 기마 탄 토기처럼 교과서에서 하나의 사진만 알고 그런 모양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양은 비슷하지만 말 탄 인물의 모습이 다른 토기 모양이 몇 개 있더군요. 교과서만 봤던 부작용이랄까, 아니 왜 그 동안 공부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생각을 못 했던 거지?ㅡ.ㅡ

가야쪽은 철갑옷이라든지 그런 유물이 많았어요. 변한, 철이 많이 생산되고 있던 지방이란 그런건지 모르겠습니다. 유독 철갑옷, 투구, 마구 등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그리고 상형토기라는 것도. 모양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 토기래요. 고양이와 쥐를 표현해 놓은 상형토기가 있었는데 귀엽더라구요.^^ 고양이가 쥐를 잡는 그런 것을 익살맞게 표현해놓은 거래요.

고대 유물들을 보면서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유리잔, 유리 구슬 등이었어요. 유리구슬을 만드는 판도 있었고요, 유리잔 같은 경우는 외국과의 교역활동으로 인해 들어온 경우가 많던 것 같더라고요. 즉 서양과의 교역이 활발했었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안쪽으로 치우쳤던 것 같아요. 고대로 갈수록 외국과의 교역이 활발하고요. 근대사를 돌아보면 그런 부분이 더 아쉬워요. 안으로 모여가 아니라 밖으로 퍼져 활동하는 그런 모습들이 말이지요. 게다가 모여서 한데 어울리면 좀 자주적으로 나라를 운영해나갔으면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물론 주변에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등 강한 나라가 있어 국제 사정상 제 멋대로 나갈 수는 없었겠지만 보다 우리 잇속을 챙기지 못했던 점들이 아쉬워요. 그래서 제가 조선시대 왕들 중에서도 정말 싫어하는 왕은 인조인지도요. 두 번째는 선조.ㅡ.ㅡ

역사실에서 한글에 대한 기록물들을 봤어요. 한국인이라서 한글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한글처럼 과학적인 글자도 없는 것 같아요.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세종대왕께서 명분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서 만든 것이고 실제 목적은 조선의 정당성을 백성에게 홍보하고자 했던 것일지는 몰라도 그 목적에서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정말 대단한 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러 자료들을 보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조선의 왕이나 양반이 자신의 아내나 누이들에게 편지를 한글로 보냈다는 사실을요. 최근에 어린 정조의 한글 편지도 사진으로 한참 돌아다녔지만 왕이 한글을 배웠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생각해보면 한글을 소리나는대로 쓸 수 있으니 배울 때 시간도 별로 안 걸렸을 거예요. 그렇게 한문으로 달달 외우면서 공부했던 왕들이니 한글은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쉬운 글자이니, 조선시대의 지배층이 보다 더 한글에 열린 태도를 가졌다면 지금의 한글의 문법체계나 맞춤법, 등등 한글, 국어 분야에서 훨씬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발전은 국가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말이예요. 지배층과 학식이 많았던 사람들이 한글을 무시했기에 한글의 체계나 연구가 더 발전하지 못하고 서민들, 또는 여자들 사이에서 근근히 전해내려왔고, 국어사전이 나중에 일제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정신,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세우고자 하는 맥락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그런 한글 발전 면에서는 한참 뒤떨어진 모습을 보여준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한글 자료실과 연이어 붙어있는 조선어학회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자랑하는 최고의 목판인쇄로 된 다라니경, 금속활자 직지심경 등등, 교과서에서는 이런 문화재를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의 예로 표현하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 우수한 기술을 왜 우린 또 하나의 발전의 계기로 삼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또 밀려오더군요.ㅡ.ㅡ 서양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인해 책을 쉽게 찍을 수 있어 지식이 널리 보급되고, 그리고 그에 따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잖아요. 생각해보면 성경이라는 소재였고, 유럽지역에선 거의 비슷한 알파벳모양의 활자, 언어이기에 보다 더 큰 파급적인 효과를 누렸다는 조건이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세종 한글창제 이후가 더 아쉬운 겁니다. 기술이 어디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 눈으로도 그 활자들을 다 봤으니. 물론 우리나라의 지리적, 언어적 위치 때문에 서양만큼의 파급적인 효과는 줄 수 없겠지만 인쇄술=지식의 전수이기에 학자들이, 지배층 선비들이 한글에 대해 보다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네요. 생각해보면 또 지배층들은 지식을 자기들만의 것으로 하고 싶었겠지만.ㅡ.ㅡ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4시간동안 돌아보고 늦은 점심 먹고 2층을 돌아볼까 생각했는데 너무나 다리가 아픈 바람에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ㅜ.ㅜ 가까운 시일내에 다음엔 2층에 도전할까 생각중입니다. 아, 그 전에 체험학습 보고서도 내고요.^^ (아, 그거 작성하려고 하니 다시 눈 앞이..ㅜ.ㅜ)

 

참, 그리고 제가 유물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덧붙였지만 정말정말로 관련된 이야기나 너무 엇나간 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 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언제나 답글을 달아주세요. 언제든지 환영이랍니다.^^

by 퉁이 | 2008/01/16 22:13 | 하릴없는 수다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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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내 삶의 양식 at 2008/01/27 20:47

제목 : 국립중앙박물관.. 뜰.. 석탑
2007년 8월 25일 토요일서울로 가는 KTX에 비치된 잡지에서 <조선시대 초상화의 초본>이란 기사를 읽게되었다.이전에도 어디선가 한번 읽었던 내용인데자세히 그 내용을 읽어보니 새로운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다.그래서해당 내용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국립중앙박물관은 매월 4째주 토요일에 무료입장이 된다]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유지에 스케치를 한 "초본" 그림밑그림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이번 전......more

Commented by Janet at 2008/01/22 01:01
저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우리나라는 과거의 기술과 현재의 기술이 단절되어 있어서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서양 것만 쫓아가다 보니 정작 우리 전통 기술에 대해서는 관심을 안가지게 되고, 그 기술로 생산된 유물마저 그저 보존만 하는 것만 알고 창조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그 [보존]이라는 것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상당히 의문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이 기술을 천대하는 사회 문화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옛날이 좀 낫죠.)
Commented by Janet at 2008/01/22 02:12
한글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의 견해입니다만, 당시 지배층이 목을 내놓고 한글 창제에 대해 반대를 하는 것은 이로 인해 자신들만이 독점으로 갖고 있는 기득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당시 지배층이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열린 의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아마 백성들 대부분은 배울 수도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배울 시간도 없거니와 사농공상의 신분 체계도 발목 잡고 있고, 가장 중요한 [지필묵]이 백성들 입장에서는 사기 힘들었을겁니다. 세번째 이유만 갖고도 아마 한글을 배우라고 하면서 동시에 배울 수 없게끔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지금에 와서도 점점 더 없는 집안 자녀들은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져 가는 것.
그러고 보니 이것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려 하는군요. -_-;


아무튼, 잘 다녀 오셨습니다. 저는 1정때 과천 현대미술관으로 갔는데, 저보다는 더 의미있는 곳에 다녀 오셨군요.
Commented by 퉁이 at 2008/01/22 21:24
Janet님//저도 기득권 측면에서도 생각을 해 봤어요. 무식한 백성들이 알면 알수록 그만큼 속여먹고 등쳐먹던 지배층들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전 미술 쪽은 잘 모르는데다가 교통편이 미술관쪽은 좀 불편하더군요.^^ 자가용이 없어서..^^;; Janet님 말씀 들으면서 또 생각하니,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근데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교훈은 배우지 못하고 또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려는 모습이 보여서 또 한숨이 나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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